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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대부흥 운동과 영적침체 위기에 대한 극복 방법

 목 차

 

 

. 서론 -------------------------------------------------------- 1

. 연구 목적 ---------------------------------------------------- 1

. 연구 방법 ---------------------------------------------------- 1

 

. 본론 -------------------------------------------------------- 2

. 1: 기독교 갱신운동 -------------------------------------- 2

. 2: 한국교회 5대 부흥 운동 ----------------------------- 3

. 3: 한국교회의 희망등대 ------------------------------- 12

 

 

. 결론 ------------------------------------------------------ 13

. 느낀 점 --------------------------------------------------- 13

. 목회의 적용 ---------------------------------------------- 15

1. 개척교회 ------------------------------------------------- 15

2. 직장선교회 ---------------------------------------------- 15

3. 전도운동 ------------------------------------------------ 16

 

 

 

. 서론

 

.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다섯 차례에 걸쳐서 일어난 한국교회의 대부흥 운동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국교회가 영적침체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방안을 찾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70-80년대의 하나님의 나라 확장 운동의 부흥기를 지나 정체에 빠져있으며,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영적 위기에 직면해있다. 한국교회의 리더십 부재와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 부흥운동의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교회 5대 부흥의 핵심 리더들의 리더십 패턴 연구를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한 리더십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 연구 방법

 

본 레포트의 연구 방법은 한국교회가 직면한 영적 위기와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영적 지혜를 얻기 위해 한국교회여, 부흥의 파도를 다시 타라를 요약 정리할 것이다. 이 저서는 과거 부흥운동의 핵심 지도자들의 리더십 패턴과 새로운 리더십 패턴 연구해놓은 책이다. 한국교회 5대 부흥의 내용과 리더십들의 패턴을 연구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부흥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알아보고, 현재 한국교회 부흥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New Leadership Pattern을 들여다봄으로써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맞물린 부흥운동이 현 상황과 비교하여 오늘날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것이다.

부흥 운동 핵심 지도자들의 생애와 사역과 탁월한 지도력 패턴들을 살펴봄으로써 오늘의 한국교회에 적용하려고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역사적 위기의 순간마다 그 현장에 어떻게 개입하시고 섭리하시어 한국교회를 위해 새로운 갱신과 부흥운동을 주셨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귀한 교훈을 얻고자 한다. 그리하여 위기와 정체에 빠진 한국 개신교회가 다시 한 번 힘차게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본론

 

. 1: 기독교 갱신운동

기독교 갱신운동은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부흥을 위해 다양한 역사적 정황을 준비하신다. , 사회적 위기와 경제적 위기, 정치적 위가와 종교적·영적 위기상황을 조성하신다. 그리고 갱신과 부흥운동은 부흥을 위한 열정적 중보기도와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회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과 충성스러운 주의 종들의 헌신을 통해서 온다

하나님은 부흥운동의 매 시대마다 그의 신실한 일꾼들을 선택하시고 불러 주시며, 훈련하시고 연단하신 후 그의 작정된 때 귀하게 사용하신다. 기독교 갱신과 부흥운동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 민족의 각 분야와 전 영역에 강력한 영향을 미쳐온 것을 기독교 역사와 한국교회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갱신운동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부흥운동을 갱신(Renewal)’, ‘부흥(Revival)’, 혹은 각성(Awakening)’이라는 세 용어를 교대로 사용하고 있다. 맬론(Mallone)의 표현을 빌리자면, “갱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기를 나타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갱신운동은 교회 구성원들에게 새 삶을 가져오며, 세속화된 힘없는 그리스도인들과 제도화된 기독교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의 의미와 새로운 삶을 추구하도록 하는 동인이 된다.

갱신은 하나님의 은사요, 그의 백성을 위한 성령의 특별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갱신운동을 위한 역사적 정황을 준비하신다.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역사적 위기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역사적 위기들은 인간의 마음을 겸비케 만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갱신과 부흥을 위한 전제조건은 믿음의 기도와 진실한 회개이다.

기독교 갱신운동의 특징은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들은 진정한 갱신운동의 과정 가운데 다양하게 계시된다. 에드윈 오르(J. Edwin Orr)는 부흥의 특별한 7가지 표적을 예시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부흥의 첫 번째 표는 기도이다. 두 번째 표는 회개, 세 번째 표는 능력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 체험, 네 번째 표는 신자의 전도와 불신자의 회심이다. 다섯 번째 표는 성경연구이며, 여섯 번째 표는 놀라운 기쁨의 폭발, 일곱 번째 표는 자발성이다.

기독교 갱신운동의 영향은 교회 내부적으로는 교회를 갱신시키어 교회 성장과 전도와 세계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건전한 변혁의 열매를 생산하여 건강한 사회건설이 이루어지게 한다.

갱신운동은 교회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불신자의 회심, 교회 성장,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는 성령의 사역과 연관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중요한 양상이다. 또한 갱신운동은 전도운동을 일으켜 불신자들의 회심을 가져왔다.

 

 

. 2: 한국교회 5대 부흥 운동

1. 1: 한국교회의 오순절(1903~1912)

(1) 부흥 운동의 내용

 

한국 기독교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한국 교회의 오순절혹은 평양 대부흥 운동이라고 즐겨 부른다. 이 시기에 한국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다. 로이 쉬어러(Roy E. Shearer)의 저서에 의하면 이 시기에 한국 개신교 신자들의 숫자가 약 2만 명에서 약 14만 명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에드윈 오르(J. Edwin Orr)1912년의 한국 개신교인의 숫자는 약 30만 명이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동학혁명,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의 변화와 심각한 시련을 경험했다. 또한 명성황후 시해, 을사늑약(1905)을 통한 좌절을 겪었고, 한반도는 러시아와 중국과 일본의 전쟁터가 되었다. 결국 1910년 한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로 한국 민족주의는 증대되었다. 그 당시 한국의 사회적 정황은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신분제로 인해 양반 계층, 서민 계층, 하류층(천민 계층)으로 나눠져 있었으며 차별이 심했다.

1895년 전까지 한국의 교인수는 뚜렷한 성장이 없었다. 그러나 전 민족이 경험한 역사적인 위기상황 가운데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시련의 파도를 겪으면서 한국 민족의 마음이 깨지고 낮아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오순절인 평양대부흥운동(1903~1907)은 소수의 기도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성령 충만의 은혜를 사모하던 선교사들의 성경연구와 합심기도의 불씨가 한국 초대 교회의 역동적인 부흥의 불길로 번졌다.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은 19038월 원산에 있던 몇 명의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로버트 하디와 쿨러 화이트, 조세핀 하운셀과 메리 놀스였다. 이들은 모여서 성경연구를 시작했는데, 이 모임을 통해 선교사들이 죄를 자백함으로써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190310, 스칸디나비아 선교사 프레드릭 프랜슨이 원산에 도착해서 지역부흥을 이끈 하디를 도왔으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4일간의 집회를 통해 한국인들과 선교사들에게 영적으로 도전을 주었다. 부흥운동은 한국 전체로 번져나갔고 1905년까지 계속되었다. 1905-1906년의 부흥운동은 초교파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나아갔다.

1907년의 부흥운동은 1905년의 을사늑약 체결 이후에 뒤따라온 절망적인 정황 가운데서 일어났다. 부흥운동의 불씨는 길선주 장로가 죄를 고백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길선주 장로는 190716일에 시작된 평신도를 위한 부흥사경회에서 죄를 고백했다. 그는 1906년 여름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박치록 장로와 같이 새벽기도회를 시작했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가장 탁월한 지도자는 외국 선교사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지도자인 길선주 장로였다.

한국교회 오순절의 중요 요인들은 민족적인 위기, 새벽기도운동, 성경연구, 기독교 문서운동 그리고 부흥사경회 등이었다. 그 결과로 일어난 영향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이 개선되었고, 전도와 교회 성장이 일어났으며, 한국교회 지도력이 개발되었다. 또한 해외 선교가 시작되었고, 사회봉사 활동과 백만명 구령운동이 시작되었다.

 

(2) 부흥 운동의 핵심 지도자 : 길선주 목사

 

길선주 목사의 지도력이 형성된 중요 요인들은 그 당시의 역사적 정황과 특별한 영적 체험의 영향, 그리고 성경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인들은 을사늑약에 의해 비참함을 맛보고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정황 가운데서, 길선주 목사는 복음을 가지고 조국을 위로했다.

길선주 목사의 일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그의 지도력 패턴은 다음과 같다. 그는 복음을 위한 초교파 지도자 비전을 품은 기독교 교육가 평신도 지도력 개발자 해외 선교의 비전을 가진 지도자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였다.

길선주 목사의 새로운 지도력 패턴(New Leadership Pattern)은 그 시대의 역사적 정황과 그 시대의 중요 문제들과 연관이 있다. 한국인들은 엄청난 시련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역사적 정황이 그가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도록 했고, 복음의 효과적 전달을 위해 정황화(토착화)를 시도하도록 했다. 그는 극심한 고난 중에 빠진 한국인들의 참된 위로자였다. 그는 회심을 강조했으며, 재림의 메시지를 통해 고난 중에 빠져 있던 한국교회와 한국 국민을 위로했다. 그는 모든 성도가 그날에 그리스도의 승리의 영광을 함께 나눌 것이라고 설교했다. 또한 그는 한국교회 새벽기도회의 창시자였다. 이 운동은 한국교회의 영적 성숙과 기도하는 한국교회 정착과 함께 교회 성장에 크게 공헌했다. 또한 길선주 목사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 관습의 성경적인 개혁자였다. 그는 남자석과 여자석을 구분하던 휘장을 치워버렸고, ‘새사람 운동을 시작하여 한국인들의 의식세계를 복음으로 발전시켜 삶의 질을 높여주려고 시도했다.

 

2. 2: 시련의 용광로 속에서 한국교회의 갱신과 부흥운동(1930~1940)

 

(1) 부흥 운동의 내용

 

2기 한국교회 부흥기는 암흑기라고 일컬어지는데, 그 이유는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국제적 혼란의 와중에 일본제국주의의 혹독한 식민통치의 지배하에서 엄청난 핍박과 시련을 직면하였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이 불로 연단된 금보다 더 정결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는 불황이 계속되었으며, 한국교회는 일본 정부의 핍박 때문에 다소 제도화 되었고, 어느 정도 교회의 열정을 잃어버렸다. 한국교회는 이전의 그 활력을 잃었으며 분열의 경향들까지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만주로, 러시아로,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

일본은 1941년 진주만을 습격함으로써 미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위해 많은 사람들과 군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본의 식민정책은 한국이 일본의 뜻에 더욱 잘 따르게 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군사정부는 한국인들을 일본제국에 동화시키기 위해 신사참배를 요구했고,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고 했다. 일본의 신사참배는 로마제국주의 기간 동안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로마의 황제 숭배과 그 성격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한국 개신교 지도자들은 이 정책의 목적을 인식하였고 신사참배는 본질상 사탄적인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 정부는 신사참배는 시민으로서 황제에게 충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존경을 표현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것을 우상숭배로 보았다. 초기에는 많은 교회들과 지도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일부 교회와 지도잗르은 신사참배가 하나의 정치적이며 문화적인 표현이라고 타협하거나 신사참배에 참여했다.

그 결과로 젊은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그들의 영적 순결성에 대해 엄청난 시련을 당했다.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분열되었다. 많은 교단들은 교회가 잔존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신사참배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389월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많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일본의 종교적 핍박인 신사참배 문제로 심한 고난을 당했다.

이 시기 한국교회 안에는 어떤 희망도 영적 활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교회는 이미 애국주의와 민족복음화의 열정 등 모든 방면에서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민족복음화의 맥박을 약화시켰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교회의 영적 활력을 잃어버리게 했다. 한국교회는 이미 한국 사회 안에서 지도적 위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이미 한국 사회 안에서 지도적 위치를 잃었고, 더 이상 지식층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교회 안과 밖에서 새로운 민족주의가 넓게 퍼져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극심한 시련기 속에서도 참된 교회의 남은 자들을 보존하셨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교회는 그 역사상 가장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 터널의 끝에는 자유의 빛이 비추고 있었다. 전쟁에 실패한 일본은 한국인들의 앙갚음을 피하기 위해 투옥되어 있던 한국교회와 민족지도자들의 대부분을 은밀히 사형하려고 집행 계획을 세웠다. 전국적으로 투옥된 지도자들의 숫자는 1만 명이 넘었다. 사형집행 날짜는 1945815일이었다. 일본에 투하된 2개의 원자폭탄은 일본의 조기 항복을 가져왔다. 1945815일 정오에 일본 천황이 미국에 환전히 항복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일본이 한국의 지도자들을 처형하려고 작정한 그 날이 일본이 망하고 항복하게 되는 날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미래의 씨앗으로서 한국교회의 마지막 남은 자들을 그의 신비스러운 권능의 손으로 구원하셨다.

 

(2) 부흥 운동의 핵심 지도자 : 주기철 목사

일반적으로 지도자의 인격과 지도력 패턴은 그의 일생의 많은 요인들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주기철 목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지도력 형성의 중요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그는 신실한 부모의 영향을 받았으며 훌륭한 학교 스승들의 영향을 받았고 개인적 질병과 시련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특별한 영적 체험의 영향을 받았고 하나님의 뜻을 순복하는 교회 지도자의 지도려을 보여주었으며 예언자적 지도자상을 나타냈고 주일학교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주기철 목사의 새로운 지도력 패턴(New Leadership Pattern)은 성경적 신앙이 위협을 받고 있었고 한국교회가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로 핍박을 받고 있었던 역사적 정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시대의 중요한 문제점 중의 하나는 신사참배였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선교사들은 한국을 떠나야 했고, 기독교 계통의 학교들은 폐교되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투옥되었고, 얼마는 순교했다. 한국교회는 시련의 시기 속에서도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을 배출하였으며, 주기철 목사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주기철 목사는 구약의 다니엘처럼 살아계신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그의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데 효과적으로 반응했다. 그의 순교는 특히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그의 일사각오의 순교정신은 한국의 ㅈ어통보수주의 교회들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3. 3: 민족의 비극(6·25 한국전쟁) 그리고 영적 부흥(1960~1969)

 

(1) 부흥 운동의 내용

 

한국은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로 인해 혹독한 시련을 경험했다. 이 시기에 한국교회는 1960년 약 90만 명의 성도에서 1969년 약 300만 명으로 급성장 하였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지만, 5년 후에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의 파괴와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던져졌다. 1960년대 초기에는 한국인의 약 7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였고, GNP는 겨우 87달러였다. 1961년에는 박정희 장군과 추종자들이 5·16 군사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한국 국민은 한국정재의 상처로 고난을 당했고, 1960년대 초기에 두 번의 혁명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치적 불안정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계속되는 위협은 국가와 교회에 시련을 가중시켰다. 군사정부는 18년 동안 정권을 잡았다. 국제적으로도 정세가 매우 불안정했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쿠바와의 관계도 불안정했으며 소련과 동독 군대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박정희 대통령 정권은 계획경제를 통해 경제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장기집권으로 인해 정치적으로는 불안정을 주었다.

1960년대의 한국교회 상황은 신사참배와 신학적인 차이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다. 이단 감람나무 운동통일교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그리고 기도원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대형 전도집회가 남산과 삼각산과 한강변에서 자주 열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민족복음화를 위한 대형 전도대회가 많이 일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한강변의 연합 전도대회가 성공한 후에 민족복음화를 위한 중앙협의회가 조직되었다. 또한 김활란 여사와 몇 사람은 19641016일에 모임을 계획했다. 그녀는 한국교회의 공동과제로서 민족복음화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이화여대에 초청했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참석자에게 초교파적인 계획으로 1965년을 민족복음화의 해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한경직 목사는 그 운동을 위한 계획수립에 많은 도움을 제공했다. 민족복음화 전도대회의 특징은 대학생, 교사, 교수, 의사, 간호사들로 이루어진 전도팀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지교회의 지도자들, 평신도들이 지도력이 변화되었다. 김활란 여사의 금란 전도클럽은 전국적인 조직으로 나타났다. 그녀가 그 운동을 시작하였을 때 그녀의 나이는 66세였다. 그녀의 정신과 그 운동은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교단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경직 목사와 김활란 여사는 전도대회가 추진력을 가지도록 도전하고 촉진했다.

1965년 민족복음화 전도대회의 성공요인은 어느 한 가지로 요약할 수 없이 다양하다. 국민경제의 개선 기도운동의 활성화 한국 사회의 도시화 교회교육과 신앙훈련의 강화 북한 공산정권의 남침위협과 전도운동 등이다. 1965년 민족복음화를 위한 대중전도운동은 급변하는 역사적 정황 가운데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잘 조직된 운동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 부흥운동이라고 특정 지을 수 있다.

 

(2) 부흥 운동의 핵심 지도자 : 한경직 목사

 

한경직 목사는 1960년대 갱신과 확장 시기의 한국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한 인격을 소유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다. 그는 서울 영락장로교회를 설립하였고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가지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평생을 헌신한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그의 지도력 패턴이 형성된 요인은 무엇인가? 한경직 목사의 가족들과 민족이 처한 역사적 상황, 그의 학교 스승들, 해외유학 그리고 그가 경험한 시련들이 한경직 목사의 지도력 형성에 중요한 요인들로 작용했다.

한경직 목사의 지도력 패턴은 역동적인 목회철학을 가진 지도자였고 세계 선교의 진흥자요 후원자였으며 영적 권위를 겸비한 지도자였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한 겸손한 지도자였으며 탁월한 설교자였고 기독교 애국자였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지도자였다.

한경직 목사의 새로운 지도력 패턴은 그가 사역하던 시대의 한국의 역사적 정황과 여러 문제들과 서로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는 한구전쟁의 시련기를 맞이한 한국 국민을 돕기 위한 사회봉사를 주창하였으며, 민족복음화를 위한 비전을 품고 산 지도자였고, 평신도 지도력 개발을 위해 기독교 학교들을 설립한 선각자였다. 그는 교회의 사회봉사 주창자이며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으며 평신도 지도력 개발을 위한 기독교학교 설립의 개척자였다.

 

4. 4: 한강의 경제기적과 교회의 폭발적 성장(1970~1980)

 

(1) 부흥 운동의 내용

 

한강의 경제기적이라는 명예를 얻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한국교회도 세계교회가 놀랄 만큼 큰 성장을 가져왔다. 신명기 28장의 약속과 축복이 한반도의 남쪽지역(남한)에서 일어난 것ㅇ디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많아지는 것을 크게 기뻐하시므로,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불안의 요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부흥과 한국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허락하신 것이다. 다니엘(Lee. Daniel S.)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 교인의 인구는 제2기 부흥기 동안(1970-1980) 3백만 명에서 약 6백만 명으로 급성장했다.

이 장에서는 제4기 한국교회 갱신과 부흥기간의 역사적 정황들, 정치적 사회경제적, 종교적 배경과 부흥의 과정, 그 갱신운동의 결과와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중요한 지도자인 김준곤 목사의 지도력 패턴을 다루려 한다.

1970년대의 한국은 많은 발전도상 국가들 중에서 앞장서서 한강의 경제기적을 이루어가던 시절이었다. 급변하는 한국의 정치, 경졔, 사회 등은 한국교회의 영적인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1970년대 동안 남한과 북한 사이의 긴장은 계속 이어졌고, 박정희 정부는 군사독재와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저항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정치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의 강력한 계획경제정책의 시행으로 경제적인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져 생활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고 부유해졌다. 한편 한국교회도 제4기 갱신과 확장기간이 시작되어 급속히 성장하고 발전되었다.
1970년대의 대형 전도대회는 한국 사회의 갈등과 긴장의 상황 가운데서 계속되었다. 그 전도대회들은 1973년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1974년의 ‘Explo 74', 1977년의 ’77 민족복음화성회등이다. 그리고 1980년의 세계복음화성회1984년의 한국 개신교 1백 주년 기념대회198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70년대의 민족복음화운동은 대형 전도대회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것의 과정은 더욱 조직적으로 확장되었다. 확실히 1970년대는 대형전도대회의 절정기였다. 그 기간 동안에 갱신 급속한 도시화는 대도시에 대형교회가 한국교회 안에 출현하도록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에, 기독교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25퍼센트를 초과하게 되었따.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1970년대 한국교회의 민족복음화운동을 위한 대형 전도대회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집회는 가장 모범적인 대형 전도대회였다. 가장 중요한 구호는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였다.

Explo ‘74는 한국대학생선교회(KCCC)가 주관한 대형 전도대회였다. 이 전도대회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이후 14개월 만에 동일한 장소에서 1974813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몇 가지 혁신적인 것을 소유한 Explo ’74 전도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훈련의 성격을 가진 집회였다. Explo ‘74의 표어는, ’예수 혁명! 성령의 제3의 폭발!‘이었다. 그 구호는 그들의 영적 사명을 표현한 것으로서 한국 기독교인의 심령에 큰 도전을 주었다.

4기 한국교회 갱신과 확장기간 중의 대형 전도대회의 결과는 전도에 대한 열정과 민족 복음화 그리고 급속한 교회성장을 가져왔다. 그리고 대형 전도대회는 한국교회 가운데 초교파적인 협력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도대회들을 통해 한국교회의 잠재적인 능력이 표출됨으로써 민족복음화운동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2) 부흥 운동의 핵심 지도자 :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는 제4기 한국교회 갱신과 확장 시기의 핵심적 지도자 중 한 분이다. 특히 그는 그 기간 동안 대형 전도대회를 위해 헌신한 탁월한 전략가요, 기획가였다. 지도자의 세계관과 신학은 그의 개인적 경험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특히 한 사람의 영적인 경험은 근본적으로 그의 인생의 목표에 충격을 준다. 김준곤 목사의 지도력 형성의 주요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가혹한 시련의 영향 살아 계신 하나님과 만남의 체험 멘토의 영향 민족복음화에 대한 헌신이다.

김준곤 목사의 지도력 패턴은 민족복음화를 위한 비전의 지도자였으며 분명한 목표를 가진 교회 지도자였고 기도하는 한국교회 지도자였다. 그리고 복음을 위한 초교파 지도자였다.

김준곤 목사의 새로운 지도력 패턴(New Leadership Pattern)은 그 시대의 역사적인 정황, 그 시대의 특별한 문제들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그가 우수한 한민족복음화의 전략가요, 위대한 평신도 지도력 개발자요,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를 위한 탁월한 공헌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5. 5: 세계 속의 한국과 세계복음화에 충성하는 한국교회(1981~1989)

 

(1) 부흥 운동의 내용

 

부흥 운동의 내용을 다루기에 앞서 이 시기의 역사적 정황을 살펴보려고 한다. 당시 정치·사회적인 상황은 197910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민주주의의 봄이 오는가 싶었으나 19791212일 사태로 전두환에 의하여 또 다시 군부정권이 들어오게 되었다. 게다가 5·18 ‘광주 사태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민간인들의 희생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게임을 서울에서 개최함으로써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경제 성장과 성장한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상황은 남한의 정치적인 불안과 남한에 대한 북의 위협이 계속됨으로써 성도들은 더욱 열심히 조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대형 전도대회 운동은 혼돈된 역사적 정황 가운데에서도 계속되었다. 1984년 한국 개신교 1백 주년기념 전도대회,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위한 전도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한 전도대회 등이 개최되었다. 한국 개신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인 명성교회,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인 광림교회 등이 한국 서울에 위치해있다.

 

(2) 부흥 운동의 핵심 지도자 : 김창인 목사

 

김창인 목사는 제5기 갱신과 부흥기의 핵심지도자였다. 그의 지도력 패턴은 오늘과 내일의 한국교회 지도자를 위한 좋은 모델이 된다. 김창인 목사의 지도력을 형성한 중요한 요인들은 부모의 영향과 멘토들의 영향과 그리고 그가 겪은 영육의 시련의 영향들이었다.

김창인 목사의 지도력 패턴은 한국교회의 갱신과 확장의 다른 시기에 공헌했던 교회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징들이 김창인 목사의 지도력 패턴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모범적인 지교회의 선한 목자 이웃과 함께한 탁월한 교회행정가 청중을 감동시키는 은혜로운 설교자 민족복음화를 위한 실천적 지도자 한국장로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이다.

김창인 목사의 새로운 지도력 패턴(New Leadership Pattern)은 그가 사역하던 시대의 역사적인 정황과 그 시대의 특별한 문제들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새로운 지도력 패턴은 한국교회 주일학교 교육을 위한 개척자요, 북한선교를 위한 비전의 지도자요,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전략가이며, 세계 스포츠 선교를 위한 후견인이요, 성경적인 신앙과 교회의 순결을 보존한 파수꾼 등이다.

 

 

. 3: 한국교회의 희망등대

1.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제언

한국교회 갱신과 부흥에 대한 새로운 희망은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어야 하며, 솔로가 아니라 합주곡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새로운 영적 부활과 갱신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긴급 제안한다. 한국교회 안에 진정하고 철저한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희망이 있다. 교역자들의 경건한 삶과 영적 권위가 회복되어야 희망이 있다. 새벽기도운동이 다시 활성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평신도 예수제자화운동이 본격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예배가 갱신되어야 희망이 있다. 교회 행정조직의 경직화를 예방해야 희망이 있다. 성경적 지도력(Biblical Leadership) 연구와 훈련이 교회 안에서 활성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신학교육의 개혁이 있어야 희망이 있다. 목장교회(구역, 다락방, 소그룹)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희망이 있다. 한국교회 미래를 심는 주일학교 부흥운동이 재건되어야 희망이 있다. 생명 주는 말씀운동이 재건되어야 희망이 있다. 성경적인 성령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2. 하나님 나라 확장운동(부흥운동, 교회성장운동)을 위한 제언

 

교회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공동체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병들었거나 늙지 않았다면, 반드시 성장하고 확장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체된 오늘의 한국교회가 주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새롭고 건강한 모습으로 거듭나기롤 소망한다. 그 결과로 한국교회 안에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가슴들이 다시 타올라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나라 확장운동들이 실천될 수 있기를 긴급 제안한다. 역동적 전도운동이 실천되어야 희망이 있다. 개척교회 설립운동을 체계적이며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희망이 있다. 직장복음화운동과 직능별 선교회 조직이 활성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민족복음화를 위한 전략적인 전도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군복음화운동이 더욱 체계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북한 선교가 더욱 활성화되고 체계화되어야 희망이 있다. 한민족복음화 운동과 세계선교운동의 활성화에 희망이 있다.

 

3. 세상(이웃과 민족)을 치유하기 위한 제언

 

한국 사회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같다. 이 민족의 여러 가지 질병의 증상들은 빨리 치유하지 않으면 중병이 될 수도 있다. 한국교회는 허물과 약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순수한 성경적 복음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의 영성을 가지고 있고, 새롭게 거듭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에 소망은 있다. 그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와 긍휼과 사랑으로 갱신된 한국교회는 병든 대한민국을 치유할 수 있는 주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우리의 병든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치유하기 위한 몇 가지 대안을 긴급 제안한다.

한국 기독교는 나눔과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병든 민족을 살리기 위해 절제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한국 기독교 화해와 평화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긔 그리스도인들은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언어순화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희망과 비전을 노래해야 한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민족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의인이 되어야 한다.

 

 

. 결론

 

. 느낀 점

 

한국 개신교회의 영적 현주소는 지금 몇 시인가?(31) 시계 바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한국교회의 부흥은 다시 돌아올 것인가? 파도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해안에 부딪히는 것처럼 부흥의 은혜가 멈춰버린 것과 같은 한국교회에 다시 한 번 부흥의 파도가 밀려올 것인가? 책을 읽고 요약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교회에 부흥이 다시 올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의 온갖 조롱을 받으며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절망을 가져다준다. 또한 성도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교회 다닌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있다. 한국교회가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돌아보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왜냐하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신사참배 결의(1938)로 인해 한국교회가 겪은 역사적 상황이 지금의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 안에서 지도적 위치를 잃었고, 더 이상 지식층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에는 엄청난 부흥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180도로 교회에 대한 인식이 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책을 통해 당시 역사적 정황과 핵심 지도자들의 지도력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알 수 있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보이는 노력이나 해명을 하는 대신,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순결한 목회자들을 통해 신뢰를 이어나갔으며 이후 1960~1980년대에는 전도대회를 통해 온 나라에 복음을 전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현재 한국교회는 갱신과 부흥을 말하면서 회개의 부분을 강조한다. 그러나 회개만 함으로써는 부흥이 오지 않는다. 1938년 신사참배라는 역사적 오류를 범한 이후에 회개만 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면 부흥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가 그런 부끄러운 일음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게 부흥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터넷에 교회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오면 댓글들에는 개X교라는 욕설과 기독교를 비하하는 여러 말들이 쓰여 있다. 그러면서 너나 잘 믿고 우리한테 믿으라고 전도 좀 그만해라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나는 관심 없으니 너네나 잘 믿으라는 소리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며 우리만 잘 믿자는 생각으로 조용히 교회를 다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교회 다니는 것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나는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는 회개 운동과 더불어서 자신감을 갖고 전도 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940-50년대의 한국교회의 역사가 이 방법을 통해 영적 침체기를 극복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신학교 수업이 이론 위주의 수업이 아니라 현장 중심, 전도와 목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수가 되는 길과 목회자가 되는 길은 다르다. 교수들이 가르쳐야 할 것은 본인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진실한 목회자를 길러내기 위한 수업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 목회와 관련된 것을 배우는 것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전도와 관련된 수업도 없고, 설교와 관련된 수업도 고작 6학점이다. 평생 전도와 설교를 해야 하는데 정작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나간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학교 커리큘럼이 변해야 하고, 이를 통해 부흥을 가져올 목회자후보생들이 길러져야 한다. 더 이상 머리만 큰 신학생들이 아니라 가슴이 뜨겁고 기도와 전도와 설교에 열정적인 주의 종들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목회의 적용

 

1. 개척교회

 

나는 기회가 된다면 개척교회를 하고 싶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말씀하신 것처럼, 세 명이서 공동으로 교회를 설립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인데, 하나는 공동창업을 하여 평일에는 카페를 운영하고 주말에는 홀을 교회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2년 사이에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출신 졸업생이 크레페드림이라는 크레페 전문음식점을 창업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망할 거라고 했지만 승승장구 하여 이제는 6호점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가게의 영수증에는 영어로 “Grace, the reason to begin again(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프린팅이 되어 나온다. 창업 멤버 중 한 명이 지금 나와 함께 사역하고 있는 전도사님이다. 그 전도사님께서 졸업 후 함께 인천지역 대학가에 7호점을 내고, 평일에는 크레페를 팔고 주말에는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식사 대접 봉사도 하고 예배를 시작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크레페를 팔면서 주변 대학생들과 친해지고, 대학생선교를 통해 한 명씩 예수의 제자로 삼고 싶다.

만약 졸업 후 계획대로 한다면 동료 전도사님과 함께 창업을 하고 동시에 개척 준비를 하려고 한다. 평일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파트 사역자로써 교회 경력 또한 준비할 것이다. 동시에 캠퍼스선교도 함께 진행하여 한 명씩 제자로 삼고, 개척 멤버를 모을 계획이다.

2. 직장선교회

 

책을 읽으면서 교수님의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성도들을 예수의 제자로 삼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주일에 모인 교회에서는 예수의 제자일지 몰라도 나머지 6일 간 흩어진 교회로서의 삶에서는 제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주일에만 거룩하고 평소에는 삶이 정결하지 못하고 온갖 비윤리적인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기 때문에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선교회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 선교회를 통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또한 직장에서 예수의 제자의 삶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훈련시켜 전도자의 삶으로 살아가게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직장선교훈련센터 동아리에서 1-4단계 훈련을 받고 앞으로 성도들이 직장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훈련 받아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3. 전도운동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화장실에 들어가면 여러 동아리 홍보물들이 붙어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도동아리이다. 전도동아리의 표어는 자극적이다. 작은 종이에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전도사님들, 전도합시다.”. 그렇다. 나는 전도사이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았었다. 1940-50년대의 영적 암흑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1960-1980년대의 전도운동이었다. 나는 2010년의 시기가 1940-50년대의 영적 암흑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시계바늘이 도는 것처럼, 파도가 일정한 간격으로 부딪히는 것처럼 1940-50년대의 영적 상황이 2010년에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영적 갱신과 회개가 당연히 필요하지만 전도도 또한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전도하려고 한다. 전도사이지만 전도하지 않았다. 앞으로 1월부터 개강 전까지는 매주 토요일 교회에서 전도를 하고, 개강 후에는 전도동아리에서 양지 시내와 주변 마을을 향해 복음을 들고 가서 사람들에게 전도할 것이다. 이 전도훈련을 통해서 나중에 나의 목회에도 적용하여, 입만 살아있는 목회자가 아니라 직접 나가서 발로 뛰며 전도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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