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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론과 종말론 과제 요약 - 조직신학

 종말론은 단지 기독교 교리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선포의 특징이자 모든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교회 전체의 특징이다(11).

구약의 종말론적 전망. 구약에는 종말론이 존재하는가? 그렇다. 구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종말론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장차 오실 구속자, 하나님의 왕국, 새 언약, 이스라엘의 회복, 성령의 부어짐, 여호와의 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개념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신자들은 가까운 미래에나 먼 미래에나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개입을 고대했다(24).

신약 종말론의 본질.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종말론적 사건이 이미 발생했음을 인식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또 다른 종말론적 사건들이 일어날 것임을 인식한다(26). 신약의 종말론을 구체적으로 특징짓는 것은 이미아직사이의 긴장이다. 우리는 말세에 속해 있지만 심판의 날(또는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33).

역사의 의미. 헨드리쿠스 벌코프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시대의 사건들을 세속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주장한다(40). 이것은 성경적 종말론의 한 측면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역사를 이해하기 전에 첫째, 배격해야 할 역사관이 있는데 고대 헬라인들의 순환적 역사관이고, 둘째는 무의미한 사건들의 연속인 실존주의적 역사관이다. 기독교적 역사관은 낙관적 역사관이지만 종종 현시대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시대와 다가올 새 땅에서의 문화가 연속성을 가질 것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의 중심적 주제였으며, 사도들의 복음 전파와 가르침의 중심 주제이며(65), 종말론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는 공간적 함의를 갖기도 하지만 보통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묘사한다(70).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이며 또한 미래적 실재이다.

성령과 종말론. 바울은 신자가 성령을 통해서 미래 시대의 능력과 특권과 복을 이미 접할 수 있음을 말한다. 신자들은 다가올 시대의 복을 이미 누리고 있지만 아직 그 복을 충만히 누리지는 못한다(90). 성령은 신자들에게 양자됨의 확신을 준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의 부활 모두에 있어서 역사한다(97).

이미아직사이의 긴장. 이것은 신약 시대의 특징이다. ‘이미아직에 대한 개념은 교회와 신자의 생활에서, 그리고 자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모두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108).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점진적으로 새롭게 되어가는 새사람이다.

육체적 죽음.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성경은 죽음과 죄를 일관되게 서로 연결하고 있다. 죽음이 만약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실 이유도 없다(118). 죄는 육체적 죽음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영적 죽음도 가져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구속 사역을 통해 죽음을 정복하셨다.

불멸. 영혼불멸의 개념은 18세기 이신론이 득세하던 시기에는 기독교 신앙의 일부이기도 했으나, 칸트에 의해 비판당했다(127). 성경에서는 영혼의 불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이 몸과 영혼의 부활만을 이야기 할 뿐 영혼의 불멸이라는 개념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혁신학자들 간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정리하자면 영혼 불멸의 개념은 기독교 특유의 교리가 아니며, 오히려 핵심적인 것은 몸의 부활 교리이다.

중간 상태. 중간 상태란 사망과 부활 사이의 죽은 자들의 상태를 말한다(135). 이 교리는 여러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가장 인상적인 비판은 만일 죽은 뒤에 신자들이 이미 복을 받고 악인들이 이미 지옥에 있다면 심판의 날은 왜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비판이다. 이에 대한 시원한 대답은 하기 어려운 것 같다. 중간 상태에 대한 힌트는 누가복음 1619-31절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성경에는 중간 상태에 대한 독립적인 교리가 없고 중간 상태와 부활을 하나의 기대로 소망해야 한다(156).

재림에 대한 기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고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 속에서 재림의 지연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공관복음이 임박한 재림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164), 재림의 지연이라고 말하나 사실 이 말 자체가 잘못되었다(163).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세대는 시간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특성적인 의미도 갖고 있을 것이다(169). 재림에 대한 기대는 신자의 거룩한 생활을 가져오는 동기의 역할을 한다(184).

시대의 표적. 그리스도의 재림에 선행하거나 재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컬어지는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187).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현재 드러내고 계신 것을 가리킨다. 시대의 표적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을 가리키며 또한 미래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193).

구체적인 표적들. 구체적인 시대의 표적들은 크게 세 범주로 나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중하는 표적들(초림과 재림 사이의 구원의 기회 속에서 나타남), 하나님을 향한 적의를 보여주는 표적들(환난, 배교, 적그리스도 등)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주는 표적들(전쟁, 지진, 기근.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에 언급되어 있음)이다.

재림의 성격.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일한 사건일까 아니면 두 단계로 나뉘는가? 24:31을 보면 휴거는 주님의 마지막 재림 때 주님의 강림에 뒤이어 일어난다. 환난 전 휴거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다(237). 부활 이후 신자들은 변화되어 영화롭게 되고 그후에 모든 신자의 휴거가 발생하는 것이다(242). 그리스도의 재림의 성격은 가시적이며, “인격적인재림이며, “영광스러운오심일 것이다.

주요 천년왕국설. (1) 무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실현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계 20:4-6에서 언급된 천년왕국을 현재 죽은 신자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해석한다. 20장의 사탄의 결박이 초림과 재림 전 기간 동안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이 세상에 현존한다고 믿는다. 무천년주의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국면을 포함한 사건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으로 이해한다(247). (2) 후천년주의자들은 무천년주의자들의 견해와 어느 정도 일치를 보는 것이 있지만, 뚜렷한 차이가 있다. 후천년설에 따르면 현시대는 점차 의와 평화의 천년왕국 시대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사 속에서 지속되어 온 하나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254). (3)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재림 이후 천 년의 기간 동안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역사적 전천년설에 따르면 재림 전 복음화, 큰 환난, 큰 배교 내지 반역, 인격적인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며 교회는 이 마지막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255). 역사적 전천년설은 높이 평가 할 만하지만, 재림 후 지상에 천 년 통치가 있을 것이라는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비세대주의 전천년설 모두 난점이 남아있다(258). (4) 세대주의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재림 후 천 년 동안 지상에서 통치할 것이라는 확신을 역사적 전천년설과 공유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광범위한 차이점이 존재한다(263). 이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 단계로 발생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을 성취한다.

세대주의 전천년설 비판. 첫째, 세대주의는 구속사의 기본적인 통일성을 간과했다. 그들은 성경 역사를 일곱 개의 서로 다른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인데 왜 각 시대마다 새롭게 검증을 받아야 하는가? 구약은 그림자와 모형의 시대이고 신약은 성취의 시대이지만 두 시대 모두 은혜언약은 하나다(273). 둘째,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했다. 그러나 갈 6:15-16에서는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참된 신자들을 뜻한다. 그밖에도 세대주의자들의 여러 주장들은 성경과 조화되지 않는 성경 해석 체계이므로 거부해야 마땅하다(307).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 전천년설은 계 20:1-6 본문을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천 년 통치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20:4-6에서 묘사된 천년왕국의 통치가 재림 이전에 발생한다는 점은 마지막 심판이 천 년 통치 이후에 오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마지막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되어 있다(314). 20장은 죽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을 묘사한다. 또한 지금 이 시대에 사탄이 복음의 확산을 막지 못하도록 결박되어 있는 것을 묘사한다.

몸의 부활. 몸의 부활은 성경의 종말론적 메시지의 핵심이다. 몸의 부활은 기독교 특유의 교리다. 신자와 불신자는 같은 시점에 부활하며, 그리스도의 재림 때인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다. 몸의 부활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하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하다(345).

마지막 심판. 불신자가 죽은 후 스올에 떨어져 고통 받는다면, 마지막 심판은 왜 필요한가? 심판의 목적은 인간의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에는 죽었거나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의 최종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며, 상급과 형벌의 정도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기 위함이다. 심판의 시기는 이 시대의 끝이며, 심판자는 그리스도이다(353). 천사와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되며, 심판의 대상은 이 세상에서 행해진 모든 일들이다(356).

영원한 형벌. 성경은 인간의 최종 상태가 영원한 불행 아니면 영원한 행복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367). 그러나 여러 기독교 신학자들이 영원한 형벌의 교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보편 구원론의 형태와 영혼 소멸설의 형태로 나타난다. 보편구원론자들은 지옥과 영원한 형벌은 자비하시고 능력있으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모순된다고 믿는다. 영혼 소멸설은 계속 죄를 짓는 이들은 소멸되어 비존재로 환원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불신자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라고 말해준다.

새 땅.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지구에서 떠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된 땅에 살게 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현은 현재의 우주와 완전히 다른 우주의 출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새로워졌지만 현재의 우주와 연속성이 있는 우주의 창조를 뜻한다(389). 이 땅과 새 땅 사이에는 불연속성 뿐만 아니라 연속성도 있을 것이다(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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