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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역사서 설교하는 방법 -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로 해야 한다

 1.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란 무엇일까?

나는 설교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증거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설교를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떻게든 본문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시키기 위해 고민했고, 때로는 억지스럽게 끼워 맞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설교는 항상 같은 결론을 맺게 됐다. 본문이 역사서든, 시가서든, 복음서나 선지서든, 어디든 간에 결론은 결국 십자가였다. 설교 말미에는 항상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렇게 설교하는 나조차 반복되는 결론에 식상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결론을 맺었던 이유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설교이며,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를 읽고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그리스도께서 주제가 되시는교의학에 요약된 그리스도나 그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그분의 사역 계획의 어떤 에 도달하신 그리스도가 주제가 되시는설교라고 한다. 나는 그동안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를 준비하고 구속사적인 설교를 준비할 때 딜레마가 있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하다보면 결국 항상 결론이 같아지고 내용이 뻔하게 흘러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본문을 어디를 하던 간에 상관없이 결론은 결국 그리스도께로 가고 말았고 이것은 설교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키는 좋지 못한 작업이었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항상 십자가나 성육신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이 생각난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란 그리스도께서 주제가 되시는 설교라는 것(p.171)을 독서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그 내용을 십자가와 성육신에만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주제를 설교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설교할 때마다 답답함이 있었는데 뻥 뚫리는 귀한 경험이었다!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이미 학자들이 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시원한 답변과 흡족한 정답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내가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어 정말 감사했다. 이 책을 고민의 때에 접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과제 때문에 읽기 시작했으나 내게 정말 유익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2. 구약성경은 또한 문학 작품이다.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성경은 문학 작품이라고 강조하셨던 것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생각났다. 피상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내러티브는 제발좀 내러티브로 읽으라고 강조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성경을 기록하신 뜻대로 우리가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피상적으로 해석해버리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셨던 것 같다. 가끔 유치부 설교를 준비할 때면, 아이들에게는 피상적으로 설교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본문에서 대단한 의미를 끌어내서 감동적이고 임팩트 있는 설교를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5-7살 아이들이 추상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어 내 잣대로 설교의 수준을 낮춰버릴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아이들에게 거짓말하지 말아라,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와 같이 피상적이지 않으면서도 은혜와 도전이 되는 말씀을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성경은 그저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중립적인 전달의 용기로 언어를 사용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다. 교수님께서 쓰신 언어의 직공28쪽을 보면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라는 언어의 구조물이며 성경 본문 안에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없으며 성경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이들의 행동이나 사건들은 모두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게다가 이 성경의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만은 아니다. 오히려 상징과 이미지와 은유와 환유와 알레고리와 비유와 이야기와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의 내러티브에서 어떤 한 주제만을 뽑아내서 명제화 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할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다.

성경의 저자들은 사진 같은 정확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곧 언어로 된 그림을 제시한다. 성경에는 다양한 내러티브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이 모든 그림들을 구속사라는 하나의 틀에 집어넣게 되면, 결국 각 작품의 특유성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속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역사적 본문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역사적 본문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서는 성경이 언어로 기록되었고, 성경 각 권은 장르가 있음을 인정하고 장르에 맞게 낯설게 읽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3. 설교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설교자의 역할에 대해서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교자는 사신이어야 한다. 사신은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메시지에 덧붙이지 않는다. 설교자는 자신의 권위나 자신의 메시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로 서는 것이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신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설교자는 오직 대언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설교를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사신의 역할인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말씀의 적용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입맛대로 바꿨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역할은 청중에게 본문의 현재적 적실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씀의 적실성은 삶의 어떤 영역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새롭게하는 말씀에게는 출입 금지 구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설교자는 모든 영역을 피상적으로 망라하고 여기저기서 적용점을 만들어내서는 안된다고 한다. 설교자는 본문의 메시지를 구체화 시킬 때 어떤 한계선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그 한계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설교자는 적용을 만들 때 널리 돌아다녀서는 안 되며, 본문의 특별한 요점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로, 설교의 목적은 회중을 믿음 안에서 세우는 것인데(4:11-16) 이 말은 설교자의 권한 영역이 믿음이라는 관점에 제한되어 있다는 뜻이다. 셋째는, 설교자의 임무는 자기의 개인적인 해결책들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들을 열어줌으로써 청중들 스스로가 친히 말씀과 함께 일하고 또 말씀 때문에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 말씀의 주제를 뽑아내고 적용점을 억지로 만들어내서 설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청중들의 영적인 시각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눈을 열어 하나님이 하신 일과 로고스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되는 것이다.

설교자의 역할 중 하나는 세상에 학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월터 브루그만은 그의 책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에서 설교자는 우리가 처한 현 상황을 다루는 주요 학문들에 대해 가능한 많은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고 한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내러티브를 하나의 명제로 뽑아내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내러티브는 내러티브이다. 그 안에 많은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내러티브 안에서 내가 사용하고 싶은 주제를 하나 쏙 뽑아내서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내러티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시각을 열어주면, 청중들 스스로가 친히 말씀과 함께 일하고 말씀 때문에 살아갈 것이다. 교수님이 하신 그때의 말씀이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나의 사역에서 설교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진정으로 원하게 되었다. 유치부를 하다보면 부모님 말씀 잘 듣기, 싸우지 않기 등 본문에서 억지 적용을 이끌어 낼 때가 있는데, 본문이 말하지 않는 적용점을 아이들에 맞춰서 억지로 이끌어내기보다 본문이 말하는 바를 보여주고 시각을 열어줌으로써 청중들 스스로 말씀과 연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다누스는 또한 마지막으로 말씀의 사역자는 설교에서적용에서도 마찬가지로언제나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설교자가 본문의 내러티브를 훼손시키거나 임의대로 적용을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4. 구약 역사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지금까지 1-3번을 통해 성경은 문학작품이며, 이 성경을 어떻게 설교할지, 그리고 설교하는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4번에서는 책을 읽은 내용을 토대로 앞으로 역사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역사서는 문학작품이다.

김지찬 교수님의 언어의 직공을 통해서 성경이 문학작품이며 그 속에는 수많은 언어적 장치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 장치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 역사서를 설교하기 위해 본문을 읽어 내려갈 때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저자가 사용한 언어적 도구가 무엇일지를 유심히 생각하면서 읽어 내려 갈 것이다. 그래서 본문을 읽다가 강조를 위한 언어적 도구들(직유,환유,제유 등)을 만나게 되면 저자가 이 언어적 도구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할 것이다. 저자가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아이러니나 풍유나 과장으로 받아들일지 본문의 장르와 문맥을 통해 분석해볼 것이다.

 

 

(2) 역사서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구약 성경인 역사서의 내러티브의 한 점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라는 한 점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연결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역사서의 모든 본문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역사서를 설교할 때에 본문의 내러티브의 결론을 억지로 성육신과 십자가에 끼워맞추려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주제로 연결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주제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선포이다. 그리스도는 로고스이시며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로고스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설교로 이어진다. 앞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를 한다고 말할 때에는 십자가와 성육신에 갖힌 좁은 의미의 결론만 내리는 설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은혜로운 설교를 하고 싶다.

 

(3) 설교자는 청중에게 역사서의 내러티브를 가공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설교자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자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 위해 자신을 성경에다 붙들어 매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성경이 선포하는 것만을 선포해야 한다. “설교자는 성경에게 어떤 메시지를 강요해서는 안 되며, 성경으로 하여금 자기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모든 설교자들은 당연히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를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경이 말하는 바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성경이 내러티브임을 이해하고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5. 결론

시드니 그레이누스는 독자에게 우리가 말씀을 설교할 때, 어떻게 하면 그 설교가 진정으로 말씀의 의도에 일치하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설교할 수 있을지묻는다.

과제로 세 개의 책(언어의 직공,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을 읽고 그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서를 어떻게 진정으로 말씀의 의도에 일치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설교할지 알 것 같다.

첫째, 성경은 언어로 기록된 문학 작품임을 기억하고 내러티브를 통해 저자의 내면적인 의도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설교자는 대언자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내러티브를 충분히 해석해주고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내러티브를 하나의 명제로 귀결시켜서 자신의 주장을 펴서는 안 된다. 셋째, 구약성경이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성육신에 한정된 주제가 아니며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주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십자가와 성육신이라는 항상 같은 결론을 내리지 말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설교를 하면 된다.

과제를 하면서 깨달은 이 세 가지 방법론을 잘 숙지하여, 앞으로 설교를 작성할 때 염두에 두면서 준비하고 설교할 것이다. 가장 유익했던 점은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에 대한 정의였다. 피상적이고 편협적인 결론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자체에 대한 주제로 설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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