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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의학 요약 - 벌코프 조직신학에 대하여

 1부 교의 신학의 개념과 역사

 

. 신학의 조직적 계시에 붙여진 명칭

초대 교회 시기에는 교리적 진리 전체를 조직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진리들을 상호관계 속에서 봄으로써 그것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경의 교리적 진리들을 조직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일에 대해 반론이 종종 제기 되어 왔고 오늘날도 그 일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이 점에 있어서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3세기 초부터 성경의 교리적 진리들을 완전하게 제시하고자 한 저작들이 많이 등장했다. 교부들 중에서는 오리겐이 처음으로 교리 신학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책 이름은 원리에 관하여(Peri Archon)이었다. 이런 성격의 글을 쓴 두 번째 인물은 락탄 티우스인데 그는 자기의 저작을 신성 강요집 7(Divinarum Institution-um Libri VII)이라 이름 지었다. 그 뒤를 따른 사람은 신앙 핸드북(Enchiridion)을 쓴 5세기의 어거스틴이다.

중세 동안에 나타난 교리적 자작들은 성격이 다소 달랐다. 이전만큼 성경에 기초하지 않고 주로 그 이전의 교부들이 쓴 글에 기초했다. ‘Sententiae’(명제)라는 용어가 도입된 것이 바로 이때의 일이다. 이 용어는 주로 교부들의 저작을 모은 책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피터 롬바르드가 지은 명제집(De Libres Sententiarum)이다.

종교개혁 시대 및 그 이후에는 전혀 다른 이름들이 교리적 저작들에 사용되었다. 루터 교회의 첫 교의학자는 멜랑크톤이었다. 그는 자기의 책 이름을 신학통론(Loci Communes rerum theologicarum)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이 책은 일련의 로마서 강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쯔빙글리는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석(Commentarius de vera et falsa religione)을 썼는데 이 책은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해설이라 불렸다. 또 칼빈은 자기의 주저를 기독교 강요(Institutio Religionis Christianae)라 이름지었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 명칭을 채택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Theologia(신학)라는 말이 루터파 및 개혁주의 진영에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신학적 저작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 이름에 어느 정도의 한계 설정이 필요하게 되어 didactica(교육적), systematica(조직적), theoretica(이론적), positiva(실증적), dogmatica(교의적) 등의 형용사가 사용되었다. 교의적이라는 용어는 아마도 L. 라인하르트가 처음 사용한 것 같다. 교의라는 수식어는 점차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주된 용어(신학)는 생략되었다. 또한 슐라이어에르마허의 영향으로 신앙의 교리라는 말도 사용되게 되었다.

최근에는 기독교 신앙, 기독교 신학, 교의학, 개혁 교의학, 기독교 교의학, 교의 신학, 조직 신학 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독일과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교의학이라는 용어를 단연 선호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조직 신학이라는 용어가 더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 교의의 성격

A. ‘교의’(Dogma)라는 명칭

1. 용어의 유래와 뜻. 라는 이름은 헬라어 도케인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전 헬라어 도케인 모이라는 표현은 내가 보기엔 어떻다, 내 생각에는 어떻다라는 뜻뿐만 아니라 내 결론으로는, 내가 확신하기로는, 나는 이렇게 확신한다라는 뜻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교의라는 말에는 특별히 이 확실성의 개념이 나타나 있다. 전문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공리나 자명한 진리, 공적인 규칙, 기초가 잘 잡히고 공식화된 신앙의 항목 등으로 인정되었다.

 

2. 이 용어에 대한 성경의 용법. 교의라는 말은 구약의 헬라어 번역(칠십인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신약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말은 정부의 법령을 나타내는 데 여러 번 사용되었다.

 

3. 신학에서의 이 용어에 대한 다양한 용법. 신학에서 교의라는 말이 늘 같은 뜻으로 사용되어 온 것은 아니다. 과거의 신학 문헌들은 이 말을 다소 넓은 뜻으로, 실제로 교리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초기 교부들은 교회에서 인정한 바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교의라고 부르고 이 용어를 이교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사용하였다. 중세 동안에는 무오한 가르침의 권위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규정되고 그 자체로서 신자들의 수용을 요청하는 계시된 진리로 보았다.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모두 이 교권적인 관점을 떠나, 교회가 공식화한 교의들을 신적인 진리로 인정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므로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하였다. 그들은 그 교의에 항구성과 안정성이 상당히 있다고 보았지만 교의가 무오하다고 보지는 않았으며 이 관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교의의 원천을 객관적인 것에서부터 주관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현격한 변화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교의의 원천으로 보았으므로, 기독교 공동체의 종교적 경험에 대해 교회가 권위를 부여한 표현이 바로 교의라고 생각했다. 리츨의 신학은 좀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똑같이 주관적인 것이다. 리츨주의는 교의를 교회의 신앙에 대한 확증으로 보았다. 주관적인 신앙(fides qua creditur)이 교의의 원천이 되고, 종교적 경험만큼 주관적인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도 여전히 슐라이에르마허와 리츨의 교의 개념이 많은 집단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교의의 객관적인 성격을 인정하려는 새로운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교의와 달리 교리(doctrine)는 계시된 교의에 대한 해석이며 따라서 교회의 기초가 아니라 교회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행동에 관해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해석조차도 교의가 아닌 교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B. 교의의 형식적 특성

1. 교의의 주자료는 성경에서 나온다. 개혁주의적 개념에 따르면 성경에는 교의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의가 구체화시키는 교리적 진리도 담겨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지 않은 교리적 명제들은 절대로 교회의 교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교의로 표현된 교리적 진리들은 성경에 명백하게 담겨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추론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의의 주자료는 성경에서 나온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교의가 안디다.

 

2. 교의들은 교의적 성찰의 산물이다. 교회는 성경 지면에서 확정된 형태의 교의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진리들을 숙고함으로써 교의를 얻는다.

 

3. 교의들은 어떤 합법적인 교회가 공적으로 정의한 것이다. 교의를 구성하는 마지막 단계는, 어떤 공적인 교회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공식화하고 공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때 생겨날 수 있는 질문은, 믿어야 할 것을 결정하는 권한을 어느 교회가 갖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교의가 자료적으로는(즉 내용에 관해서는) 그 권위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서만 끌어오지만, 형식적으로는(즉 형식에 관해서는) 교회로부터 끌어온다는 것이다.

 

C. 교의의 필요성

1. 교의에 대한 오늘날의 반대의 원인. 전체 기독교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교의에 대한 반대의 원인은 특정한 철학적 사조의 영향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칸트의 영향으로 교의는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 헤겔은 자기 시대의 반교의적 정신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사변적 철학을 이용하여 기독교 교의를 재건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실패로 판명되고 말았다. 카프탄의 말과 같이 헤겔의 수술은 사실상 교의의 파괴로 끝나고 말았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리츨의 신학에서 신칸트주의라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드라이어는 그의 저서 교의 없는 기독교에서 교의 없는 기독교를 부르짖고 있다. 이와 같이 헤겔 이후 철학적 사조로 인해 반교의적인 경향이 교회 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 기독교에 없어서는 안 될 교의.

(1) 성경이 진리를 기독교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제시한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딤전 2:4) 원하신다고 했다. 신약 모든 곳에서 기독교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를 나타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조건으로 하며, 여기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속적 사실들에 대한 지식이 당연히 포함된다.

(2) 교회의 통일성이 교리적 일치를 요구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통일성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것을 가리켜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 4:13)라고 부른다. 진리를 아는 일에서의 하나됨은 분명 교회의 번영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3) 교회의 의무가 교리상의 일치를 요구한다. 교회가 만약 공통된 신앙고백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그 교회는 교리상 하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은 교회는 교회가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공식화하고 그것을 표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4) 세상에서의 교회의 위치가 일치된 증거를 요구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물질적인 이권을 맡기고자 할 때도 그 사람들의 성격과 신념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진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영적인 지도를 받게 될 교회가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매우 본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5) 교의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이 가르쳐 준다. 교의가 없는 교회는 침묵하는 교회일 것이며, 이는 용어 그 자체가 모순이다.

 

D. 교의에 포함되는 요소들

1. 사회적 요소. 종교적 교의는 그리스도인 한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전체교회의 산물이다.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자기의 것으로 하는 일은 무엇보다 먼저 개인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 일은 점점 공동체적이고 단체적인 면모를 지닌다.

2. 전통적 요소. 기독교는 19세기도 더 되는 시대 전에 주어지고 완성된 계시를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다.

3. 권위의 요소.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들이 자기들의 교리들을 공적으로 확정하여 교의로 바꾸었을 때, 그들은 또한 그 교리들이 신적 권위에 기초하고 있으며 진리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선언하였다.

 

. 교의 신학의 개념

A. 교의와 교의학의 관계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교의가 교의학의 자료를 구성함으로써 교의학은 기독교 교의의 학문이라고 불리게 된다는 것이다. 교의학은 교회의 교리를 전체적으로 연구하며, 신앙의 각 학몽을 그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검토한다.

1. 교의들은 신앙 공동체의 필요에서 생겨난다. 교리가 계속해서 생겨난 것은 우선적으로 학문적인 관심이나 충동에 복종해서가 아니라 믿는 마음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2. 신학은 교의들의 형성에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또 종종 그리해 왔다. 신학은 교의의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며, 교회가 교의들을 형성하고 확정하는 일을 도울 따름이다.

3. 교의 신학은 교회의 교의들을 그 자료의 핵심으로 삼는다. 교의는 신학이 집 지을 때 쓰는 재료의 핵심으로서, 신학은 그것을 조직적인 구조로 세우게 되며, 따라서 신학은 당연히 전체 체계의 구성과 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B. 교의 신학의 대상(교의 신학의 정의)

1. 교의 신학의 대성에 대한 초기 개신교 신학의 견해.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교의 신학이 구원에 이르는 참 종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 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 섬김 등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며, 신적인 것에 관한 학문, 즉 하나님 및 하나님과 세상과의 관계에 관한 학문, 또는 자신 안에 계시는 하나님 및 당신의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서의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2. 현대 주관주의 신학에서 발전된 새로운 개념. 칸트의 현상론은 일반적인 신학 개념에 거의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현상론은 학문적이든 아니든 모든 이론적 지식을 현상계에 국한시켰다. 칸트의 인식론적 원리가 종교에서의 주관주의의 길을 닦아 놓았는데, 슐라이에르마허가 이 주관주의의 가장 위대한 대변자가 되었다. 그는 교의학을 가리켜 기독교 신앙에 관한 학문”, 즉 기독교 신앙의 내용에 관한 학문이라고 정의하였다. 리츨주의자들 역시 교의학을 개신교 신앙에 관한 학문적인 해설이라고 정의한다. 이 주관적인 경향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 시대에 대단히 인기있는 정의를 탄생시켰는데, 그것에 따르면 신학은 종교에 관한 학문”, 보다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된다.

3. 교의 신학의 객관성에 대한 최근의 인식.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은 여전히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종종 그들은 당신의 창조로부터 떨어져 계시는 하나님이 아닌 다잇ㄴ의 피조물들과 관련되신 하나님을 신학의 대상으로 본다는 분명한 ㅇ해를 갖고서 그리하고 있다.

 

C. 학문으로서의 신학

1. 신학의 학문적 성격에 대한 부정. 한때 신학은 학문의 여왕으로 널리 인식되었으나 오늘날은 그 명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한결같이 신학의 학문적 성격을 강조했고 신학을 학문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18세기 말엽 이후 인식의 기능에 대한 칸트의 비판으로 인해 신학의 학문적 위치가 흔들리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신학이 고상한 학문적 명예를 지녀야 한다는 요청을 쉽게 포기해 버리고 신학의 보다 낮은 위치를 기꺼이 인정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신학이 학문적 지위를 갖는다는, 오랫동안 존중되어 온 요청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신학을 재건하려는 임무를 떠맡았다.

2. 신학의 학문적 성격을 유지하는 일의 가능성.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가 아닌 하나님에 관한 연구를 목표로 하는 신학의 학문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학문이라는 말을 독일어 ‘Wissenschaft’나 화란어 ‘wetenschap’의 뜻으로 본다면 가능하다. “하나의 정해진 영역에 관련되거나 동일한 관점으로 겨합된 구성적 총체로서, 방법론적으로 결합되고 연결된 인식의 체계적 통일을 지향하는, 체계화된 지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D. 교의학의 백과사전적 위치

1. 교의학이 속한 학문 분과. 교의학은 거의 시종일관 조직적인 분과로, 그리고 카이퍼의 표현대로는 교의학적인 분과, 즉 교회의 교의를 중심으로 하는 분과로 분류된다.

2. 교의학과 변증학의 관계. 변증학은 서론적인 과목이나 교의학에 부가되는 성질의 것으로, 또는 조직신학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3. 교의학과 윤리학의 관계. 신학 분과 중 기독교 윤ㅎ리학 혹은 신학적 윤리학만큼 교의학과 가깝게 관련된 학과는 없다.

 

. 교의학의 과제, 방법론 및 분류

A. 교의학의 과제

1. 교의학의 과제에 대한 현대의 개념. 슐라이에르마허에 따르면, 교회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경험하는 감정들을 기술하는 것이 교의학의 과제이다. 리츨 학파에서는 교의학을 기독교 신앙에 관한 학문적 해설”, 또는 기독교 신앙의 학문이라고 보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트뢸취의 도식에서 교의학은 사실상 역사, 곧 종교들의 역사에서 자기의 자료를 이끌어 낸다. 쉐더는 리츨의 입장과 트릴취의 입장을 모두 비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유일한 원천이요 규범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바르트는 교의학의 과제를 하나님에 관한 교회의 언어를, 그것이 신적 계시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하는 일이라고 했다.

2. 교의학의 과제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 교의학은 기독교의 교리적 진리들을 조직적으로 제시하고자 애쓴다. 교의학은 한때 교회의 신앙의 내용이었던 것을 묘사하는 일로만 만족해 있을 수는 없으며 절대적인 진리 또는 이상적인 진리를 목표로 해야 한다.

 

B. 교의학의 방법론

1. 교의학의 내용이 유래되는 원천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 가장 먼저 고려할 질문은 교의학의 원천과 규범에 관한 질문이다. 역사적으로 특별히 세 가지 견해가 고려되어쓴데, (1) 성경이 교의학의 원천이라는 견해, (2) 교회의 가르침이 진정한 원천이 된다는 견해, (3) 기독교적 의식을 원천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등이다.

2. 자료를 확보하고 다루는 방식. 신학적 진리를 얻고 또 다루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또 적용되어 왔다. (1) 사변적 방법, (2) 경험적 방법, (3) 기원적-종합적 방법론이다.

 

C. 교의학의 분류

1. 삼위일체적 방법. 칼빈과 쯔빙글리는 교의적 자료를 삼위일체적으로 분류하는 길을 어느 정도 닦아놓았다. 그들의 분류방법은 엄밀하게 삼위일체적은 아니었지만 사도신경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창조자 하나님, 구속자 하나님,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논이를 각기 구분된 책에서 완결하고 교회 및 성례를 다루었다.

2. 분석적 방법. 칼릭스투스(Calixtus, 1614-1656)가 제안한 분석적 방법은 그 방법이 신학의 최종적 이유 또는 목적이라고 생각하는바 복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으로 주제(하나님, 천사, 인간, )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확보하는 방법(예정, 성육신, 그리스도, 칭의, 말씀, 성례 등등)을 다룬다.

3. 언약적 방법. 코케이우스(Coccejus)는 언약개념으로부터 분류의 원칙을 끌어낸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는 자연 언약 또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을 구분하고 그것들을 율법전, 율법하, 율법 후 세 가지로 다시 구분하여 차례대로 다루었다.

4. 그리스도론적 방법. 유럽과 미국의 많은 신학자들은, 참된 기독교 신학은 모두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며, 따라서 그 분류원리를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부터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5. 왕국 개념에 기초한 방법. 리츨은 하나님 즉 최고의 왕(신론), 인간 즉 국민(인간론), 그리스도 즉 설립자(그리스도론), 구속 또는 구원(객관적 구원론), 구원의 방법 또는 구조(주관적 구원론), 교회 또는 훈련학교(교회론), 장차의 그리스도의 오심 또는 왕국의 완성(종말론) 등을 차례대로 논의하고 있다. 이 분류는 순전히 형식적인 것으로서, 왕국 개념으로부터 유기적으로 추론한 것이 결코 아니다.

6. 종합적 방법. 이 방법은 교의학에서 요구되는 통일성을 낳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하고, 논의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 교의학의 역사

A.고대 교회 시대

1. 오리겐의 원리에 관하여(Peri Archon). 오리겐은 조직신학 같은 어떤 것을 구성한 첫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회의 교리를 당시의 문화적 철학적 계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변적 학문으로 변형시켜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2. 어거스틴의 신앙 핸드북: 믿음, 소망, 사랑. 부제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의 윤곾은 바울이 말한 세 가지의 덕인 믿음, 소망, 사랑에서 따온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깊은 사색과, 기독교 교리 전체를 엄밀한 신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진지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3. 다마스커스의 요한의 정통 신앙. 이 책은 동방교회가 교의신학을 체계적으로 해설하고자 시도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사변적인 동시에 교회적이다. 이 책은 네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며, 저자에게 전해 내려온 rghl의 가르침과 조화되고 있다.

 

B. 중세 시대

1. 안셀름의 저작들. 그는 신학에 대해 포괄적인 체계적 해설은 쓰지 않았지만 독백(Monologium), 대화(Proslogium) 등과 같이 교의적 가치가 대단히 큰 작품들을 여럿 썼는데,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본성을 노의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존재론적 증명을 전개하고 있다.

2.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 스콜라 시대의 체계적 작품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영역을 포괄하고자 했던 것으로서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Sententiarum libri 4)인데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세기 동안 이 책은 신학 지침서로 널리 사용되었고, 진리에 대해 가장 권위있는 해설로 인정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명제집을 쓸 때 피터 롬바르드의 보기를 따랐다.

3. 헤일스의 알렉산더의 대전. 이 책은 사실 롬바르드의 작품에 관한 해설이었다. 그의 작품은 엄밀하게 변증적이고 삼단논법적인 형식으로 씌어졌으며 스콜라주의적 방법을 정착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4.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다. 세 권으로 된 그의 전체신학 대전(Summa totius theologiae)은 교의학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로마 교회의 위대한 권이이며 토마스주의는 그 교회의 표준 신학이다. 둔스 스코투스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커다란 반대자였지만 그의 작품은 체계적이고 건설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이고 파괴적이다. 그의 작품은 스콜라주의의 퇴조를 나타내준다.

 

C. 종교 개혁 시대

1. 멜랑크톤의 신학 통론. 멜랑크톤의 이 작품은 개신교 최초의 교의학 지침서이다. 이 책은 로마서의 순서를 따라 진리를 해설하고 있다. 이 책의초판에서 저자는 루터와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으나 후기의 판에 가서는 많은 반대자들에게 양보하여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루터와 결별하였다.

2. 쯔빙글리의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대한 주석. 샤프는 스위스의 위대한 개혁자가 쓴 이 책을 가리켜 개혁 신앙에 관한 최초의 조직적인 해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책이 개혁신앙의 근본적인 사상들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두고 균형이 잡히고 쳬게적인 전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저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그분에 대한 인간의 전적인 의존을 강조하였다.

3. 칼빈의 기독교 강요. 칼빈의 이 작품은 그 간결함과 사상의 명료함, 내용의 적절한 배분, 표현의 온화함 등으로 합당하게 칭송을 받고 있다. 이 책은 개신교 신학에서 보다 후기에 나온 학문 위주의 작품들과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D.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

17세기의 신학이 전체적으로 대단히 논쟁적이었따는 것은 별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종교개혁은 먼 과거에 호소함으로써 바로 직전의 과거와는 결별해야 했다. 또한 형식주의 및 지성주의 정신이 승리를 거두어 냉각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신학 연구에 있어서 스콜라주의적 방법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E. 합리주의 및 초자연주의 시대

이 시대의 교의학은 어느 정도 반동적인 성격을 띠었다. 한편으로는 당대 신학연구의 형식주의와 차가운 지성주의 곧 죽은 정통이라 불린 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신학 연구에 새로운 생명을 주입시켜 신학으로 하여금 살아 있고 실천적인 신앙에 보다 직접적으로 도움되게 만들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과 또 교의학에서의 교회적 전통의 우세한 영향에 대해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인 신조들이 가르치고 있는 교리들에 대해 특별히 강하고도 끈질기게 반발하였고, 권위에 속박되지 않고 인간 이성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광범위한 운동이 일어났다. 옛 방벽들은 무너져 내렸고 교호에서는 합리주의적 배교가 놀라울 정도로 번져 갔다.

 

F. 현대 신학 시대

19세기에는 신학적 조류가 다양해졌으므로 여러 학파들-물론 이들을 엄밀한 의미에서의 학파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엔 단순히 스스로를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내는, 그리고 심지어 예리한 차이들까지 드러내는 일반적인 경향성만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2부 교의학의 제원리

. 원리 일반

A. 비신학적 학문들의 원리

1. 원리의 정의. 교의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용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하게 아는 일이다. ‘원리는 과학 및 신학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이다. 이 말은 아르케, 곧 시작이라는 헬라어의 라틴어 번역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존재, 실재, 또는 지식의 주된 원천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2. 비신학적 학문들의 원리들.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1) 존재의 원리이신 하나님, (2) 하나님의 창조물인 세계는 외적 인식의 원리이다, (3) 인간의 이성은 내적 인식의 원리이다.

 

B. 종교 또는 신학에서의 원리들

종교 및 신학은 피차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둘은 모두 동일한 원인, 곧 우주와 관련된 하나님에 관한 사실들의 두 결과이다. 종교는 이 사실들이 인간의 개별적이고 집합적인 삶의 영역에서 낳은 결과이고, 신학은 그것들이 체계적 사고의 영역에서 낳은 결과이다.

 

. 종교

A. 종교의 본질

1. ‘종교라는 용어의 어원. 종교라는 말의 어원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설령 확실하다 하더라도 종교에 대해 규범적 정의가 아닌 단지 역사적인 정의만을 제공해 줄 것이며 이 특벼한 용어를 사용하게 만든 종교 개념에 약간의 빛을 던져주는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2. 종교에 대한 성경의 용어들. 성경에는 종교에 대한 정의가 나오지 않으며 이 현상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용어조차 나오지 않는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주관적 종교와 객관적 종교를 구분하는 것이 통례가 되어 왔다.

3. 종교의 본질에 대한 역사적인 개념들. 종교는 인간 생활의 가장 보편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떄때로 인간을 가리켜 고칠 수 없도록 종교적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분과 교제하면서 살도록 예정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다.

 

B. 종교의 자리

인간의 영혼에서 종교의 진정한 자리가 어디인가에 관한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면 종교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확실히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제기되어 온 질문은 종교가-옛날 기능심리학의 용어를 사용한다면-영혼의 기능들 중 꼭 하나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 하나를 통해 작용하는가, 아니면 인간생명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혼의 모든 능력들을 통해 작요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C. 종교의 기원

1. 역사적인 방법. 역사적인 방법은 인류의 역사를, 특히 인류의 원시종교에 관심을 집중하여 연구함으로써 종교의 기원을 발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심리적 방법. 세월의 흐름과 함꼐 사람들은 역사적 방법을 심리적 방법으로 보충해야 할 필요를 느꼈는데, 오늘날은 이 심리적 방법을 더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3. 신학적 방법. 에드워즈는 종교의 기원에 대해 말하면서 한때 유행했으나 지금은 구식이거나 퇴조해 가고 있는두 관점이 있는데, “그 첫째는 종교를 원시의 또는 특별한 신적 계시에까지 추적해 올라가는 관점이다라고 하였다.

 

. 외적 인식의 원리(계시)

A. 계시의 명칭 및 개념

1. 종교와 계시의 연관성. 종교 개념은 자연히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계시의 개념에 이르게 된다. 비교종교학에서는 종교는 모두 어떤 종류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으며, “계시종교와 구분되는 순수한 자연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2. 일반적인 계시 개념. 계시라는 말은 라틴어 레벨라티오에서 나온 말로서 드러냄, 계시함 등을 나타낸다. 능동적인 의미로 볼 때 이 말은 하나님의 행동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인간에게 자신과 관련된 진리를 자신의 피조물들과 관려하여 전해 주시고 자신의 의지에 관한 지슥을 전달해 주신다.

3. 역사적 계시 개념. 계시 개념은 어느 정도 변화가 많은 역사를 갖고 있따. 신적 계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일반적인 의견의 일치가 없었다.

4. 근대 신학에서의 계시 개념. (1) 이신론적 개념, (2) 근대 관념론적 개념, (3) 위기의 신학의 개념.

5. 계시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개념. 계시 개념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자연히 생겨나는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올바른 계시 개념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순수하게 신적인 계시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결정하고 그것을 일반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게끔 정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1) 역사적인 방법, (2) 신학적 방법.

6. 계시 개념에 적용된 구분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두 가지 종류의 구분이 계시 개념에 적용되었다. 그 중 초기의 것은 자연 계시와 초자연 계시의 구분이었다. 뒤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이 구분을 버리고 일반 계씨와 특별 계시 사이의 구분을 더 애호하였다.

 

B. 일반 계시

1. 일반 계시의 가치와 중요성. 타락 이후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특별 계시가 대치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일반 계씨를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성경의 자료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2. 일반 계시의 불충분성.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일반 계시의 충분성 및 그 위에 기초한 자연 종교의 충분성을 가르쳤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세 가지의 구원 방법을 말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자력구원주의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세 방법은 (1) 자연의 법, (2) 모세의 법, (3) 그리스도의 법이라 부른다.

 

C. 특별계시

1. 성경적 계시 개념. 성경은 특별 계시의 책이며 결국 신학의 유일한 외적 인식의 언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별 계시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바로 이 원천에 또한 의존해야 한다.

2. 특별 계시의 수단. 기독교는 특별 계시에 호소한다는 점에서만 이방 종교들과 같은 것이 아니다. 계시의 방법에 있어서조차 어떤 유사성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들은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 간추릴 수 있다. (1)신현, (2)의사전달들, (3)기적이다.

3. 특별 계시의 내용.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특별 계씨의 내용이 된다는 데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성격상 하나님의 계시는 모두가 자기 계씨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역사에서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신학일 필요는 없다.

4. 특별 계시의 목적. 계시의 목적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는 계시의 최종적 목적과 가장 가까운 목적을 구분할 수 있다. 최종적 목적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목적은 자신의 덕들을 기쁘게 나타내시되 특히 그것들로 하여금 구속 사역과 구속받은 인간성 안에서 빛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D. 특별 계시와 성경

1.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역사상의 관점들

(1)교부 시대. 초기의 교부들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인정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영감된 것으로 분명하게 말하긴 했으나 성경의 영감에 대해 명백한 개념은 갖고 있지 못하였다.

(2) 중세 시대.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는 계속 인정되고 있었지만 그 권위와 올바른 의미는 전승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는 곧 교회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3) 종교개혁 시대. 개혁자들은 성경을, 그리고 성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사도적 전승이라 불린 것의 권위를 배격하고, 성경만을 믿음과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권위요 절대적인 규범으로 인정하였다. 성경이 교회의 증거에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그들은 대담하게 성경의 자증을 선언하였다.

(4) 근대 신학. 합리주의의 영향 아래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보는 엄밀한 개념에 대해 강한 반대가 생겨났다. 다양한 철학적 과학적 연구와 비평적 역사적 연구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보편적인 신념을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따라서 성경의 신적 영감 교리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

 

2. 이 둘의 관계에 대한 개혁주의의 견해. 16세기의 위대한 개혁자들에 따르면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성경으로 그 항구적인 형태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꼐서는 성경에게 기록의 형태를 주셨다. 이것으로부터 특별 계시와 성경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계시라는 말은 성경과 동일한 어떤 것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다.

 

. 성경의 영감

A. 역사상의 영감 교리

1. 종교 개혁 이전. 어떤 의미에서 종교개혁 이전에는 영감 교리의 역사라는 것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교리가 1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으로 똑같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2. 종교 개혁 이후. 워필드 박사가 영감에 대한 교회-교리라고 부른 것에 반대하는 자들이 자기들의 자유로운 생각들을 16세기 개혁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 대단히 성행하게 되었다.

 

B. 성경의 영감에 대한 성경의 증거

신적 계시뿐만 아니라 그 계시의 기록에 대해서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구속의 계시를 주신 뒤 그것을 가능한 한 잘 기록하라고 인간에게 그냥 맡겨 두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난다. 성경에 있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기록인가 아니면 신적으로 영감된 기록인가? 우리에게는 성경이 신학의 유일한 외적 인식의 원리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일이다.

 

C. 성경 영감의 성격 및 범위

1. 영감의 성격. 영감의 성격을 다룸에 있어서 먼저 잘못된 견해를 두 가지 살펴보고 나서 우리가 옳다고 보는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기계적 영감. 제이차적 저자들(인간)이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구술하신 것으로, 그들은 그저 서기였고, 성령의 말씀이 흘러간 통로일 뿐이었다고 한다. 이 말에 내포되어 있는 뜻은, 그들의 정신 상태가 정지되어 있어서 자기들의 기록의 내용이나 형식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과 성경의 스타일까지도 성령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2) 동력적 영감. 성경의 책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있어서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 개념을 부인하고, 그 개념을 저자들의 일반적인 영감으로 대치시켜 버렸는데, 이는 그리스도인 일반의 영적 조명과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영적 조명에 불과한 것이 된다.

(3) 유기적 영감. 유기적이라는 말은 하나님꼐서 성경의 기록자들을 마치 기록자가 펜을 휘두르듯 이 기계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며, 그들이 기록하기를 원하셨던 말씀을 그들의 귀에 속삭여 넣으신 것도 아니라, 그들 자신의 내적 존재법칙에 조화되게 유기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작용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 영감의 범위

(1) 부분 영감. 부분 영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교리적인 부분들과 역사적인 부분들로 나누어, 기록자들이 계시를 통해 접한 본질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교리적인 부분들은 전반적으로 영감된 것으로 보고, 기록자들이 계시와는 무관하게 알고 있던 비본질적인 진리들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부분들은 부분적으로 영감되었고 부정확성과 잘못들로 손상되어 있다고 보았다.

(2) 사상 영감. 이 사상은 분명히 신적으로 영감 되었으나 그 사상이 옷입은 언어는 인간 저자들이 하나님의 인도 없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3) 축자(Verbal) 영감. 성경의 모든 부분이 영감되어 있다고 믿으면서도 축자 영감이라는 말은 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D. 영감 교리를 불신하려는 시도들

1. 이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순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의 영감에 대한 증거를 성경 자체에서 추론해 냄으로써 순환논리라는 비판을 종종 받고 있다. 우리가 영감에 관한 성경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이 진리이기 때문이고, 성경을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은 그것이 영감되었기 때문이다.

2. 예수께서 영감 교리를 가르치지 않으셨다. 현재의 자유주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예수와 제자들이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이넞ㅇ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는 예수께서 사도들, 특히 바울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고 예수께 호소하여 영감 교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3. 성경의 현상들이 영감 교리와 모순된다. 역사비평의 영향 아래에서는 영감 교리를 배제하기 위해 아주 다른 방법이 사용도었다. 이 방법을 채택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성경의 영감을 가르치고 있음을 적어도 몇몇 경우에는 인정하고 있으나, 그와 동시에 이 영감에 대한 올바른 개념은 중복오식, 잘못, 모순들, 경우에 맞지 않는 인용들 등과 같은 성경의 특수한 현상들을 고려함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영감 교리는 원전들에만 해당되므로 실질적인 가치가 없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성경을 보호했다는 것을 항상 주장해 왔다. 영감은 당연히 보존을 요구한다. 그리고 대단히 많은 변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분명히 이 개념을 선호한다.

 

E. 영감 교리에 대한 반론들

영감 교리, 특히 축자 영감의 교리에 대해 다양한 반론들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 중에는 정말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는 것들도 있따. 그 반론들을 무시하거나, 무의미하다고 비웃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주의 깊게 살펴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며, 여기서 논의하는 것보다 더 상세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F. 성경의 완전성

1. 성경의 신적 권위. 성경의 신적 권위는 합리주의의 찬바람이 유럽을 휩쓸어 신앙의 열심을 빙점까지 끌어내리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다.

2. 성경의 필요성. 로마 교회는 교회가 성경보다 우위를 갖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성경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제대로 인정할 수 없다.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그 생명을 이끌어 내므로 자기충족적이며 따라서 자증적이라는 것이다.

3. 성경의 명료성. 로마 교회가 보기에 성경은 애매한 것이며,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조차 해석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성경은 삼위일체 교리, 성육신 교리 등과 같은 깊은 신비들도 담고 있으며, 대단히 애매하여 오해될 수 있다.

4. 성경의 충족성. 로마 교회도 재세례파도 성경을 충족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재세례파는 성경을 가치없는 것으로 보고, 내적인 빛과 모든 종류의 특별 계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 내적 인식의 원리

A. 인간의 이해력

1. 이 입장에 대한 역사적 서술

(1) 종교 개혁 시대까지.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교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계시는 당연히 많은 반대를 만났으며 계속 자기방어를 필요로 하였다.

(2)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인들은 다른 입장을 취하였으나 항상 그 입장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 이성이 아닌 기독교 신앙을 출발점으로 삼고, 이 신앙은 오직 신적 권위에만 의존하며, 성령에 의해 역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2. 이 입장에 대한 평가. 역사-변증적 방법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지를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종교적 진리와 믿음 모두를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종교적 진리는 과학의 어떤 법칙같은 것이 아니며 믿음은 단순히 어떤 과학적 탐구의 결과를 꿰뚫어 보는 지적 통찰력이 아니다.

 

B. 사변적 이성(Speculative Reason)

사변적 이성을 종교적 진리를 분간하고 판단하고 소유하는 기관으로 보는 사람들의 입장은, 특별히 이 기능들이 인간의 이해력 일반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의 입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들은 사변적 이성을,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규범이요 필요한 기능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진리의 원천으로 여겼고, 그렇게 함으로써 신적인 특별 계시 개념과 보다 효과적으로 결별하였다.

 

C. 경건한 감정 또는 종교적 직관. 이 관점의 원조는 슐라이에르마허이다. 신학에 있어서의 지식의 내적 또는 주관적 원리라는 이 개념은, 주자료를 계시로부터 끌어온다는 전제적인 가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헤겔의 개념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변적 이성을 최고로 만들고 사실상 신학을 철학으로 바꾸어 버린 사람들과는 달리 이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추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D. 도덕 의식. 이 관점은 칸트의 도덕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학에서는 리츨 및 그 추종자들의 신칸트주의의 영향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관점은도덕 의식을 종교적 진리의 참된 판단자로 삼는다. 이 관점에서 참으로 강조하는 것은 감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윤리적인 자기유지이다.

E. 믿음 : 합당한 내적 원리. 성경에 따르면 믿음은 스스로의 확실성을 지니고 있따. 그 이유는 믿음 그 자체가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와 약속에 의존하고 있끼 때문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구원의 복을 인간에게, 자기자신의 통찰력이나 모든 과학적 지식이 할 수 있는 것만큼 확실하게, 아니 그보다 더 확실하게 만들어 준다. 성경은 확실성을 믿음의 특징 중 하나로 설명한다.

 

F. 믿음의 기초. 믿음에 의해 우리는 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인다.

1. 성령의 증거에 관한 교회에서의 교리. 기독교의 진리성을 위해 인증된 그 어떤 지적 증거나 역사적 증거도 올바른 확신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기독교 초기부터 인정되었다. 그것들이 인간적 확신에는 이를 수 있는 반면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신적 은혜가 필요하다. 개혁자들은 의식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성령의 증거를 부각시켰다. 그들은 신적 계시의 진리성에 대한 확신을 신자의 마음속에서의 성령의 사역에서 이끌어 내었다.

2. 성령의 증거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

(1) 성령의 증거가 새로운 계시를 가져온다는 견해. 신비주의자들은 성령의 증거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취지의 내적 계시라고 본다.

(2) 성령의 증거는 경험으로부터의 논증과 같다는 견해. 성령의 증거는 효과적인 원인(causa efficiens)이다. 성령의 증거 없이는 믿음의 모든 동기가 설득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3. 성령의 증거에 대한 올바른 관점. 성령의 증거는 엄밀하게 말해서 믿음의 최종 근거가 아니라 믿음의 수단이다. 믿음의 최종 근거는 오직 성경, 더 낫게 표현하면 성경의 증거로, 신자에게 새겨지는 하나님의 귄위이다. 믿음의 근거는 믿음의 내용과 같으며, 내용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증거는 믿음의 효과적인 원인이다. 우리는 성경을, 성령의 증거 떄문이 아니라 성령의 증거를 통해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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