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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罪, sin)란 무엇인가? 죄론에 대한 바빙크의 신학

죄의 기원. 하나님이 창조를 모두 마쳤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보고 기쁨으로 바라보았는데 이는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세상은 발전의 시작 단계였고, 정도와 크기가 아니라 본성과 속성에 있어서 완전했다. 우리가 사는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되었기에 아주 좋았던 창조의 토대 위에 기초한다(25). 하지만 이 세상은 본래의 선을 오래 지키지 못했다. 세상이 창조되자마자 죄가 침투했다. 죄는 피조계 전체를 파괴했다.

죄의 기원에 대해 성경은 언제나 피조물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죄의 발생까지도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격리되거나 하나님의 작정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특별 계시에 의하면 죄의 가능성을 창조했던 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인간을 단번의 권능의 행위를 통해 죄와 죽음의 가능성을 초월하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라는 위험한 길을 걸어가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26).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그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처럼 스스로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법 외부에 그리고 법 위에 두어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의 이 해방은 참된 행복이 아니었으며, 참된 행복일 수도 없었다(31).

악의 기원은 존재에 대한 질문 다음으로 삶의 가장 큰 수수께끼이며 지성이 짊어지기에 가장 무거운 십자가이다. 사람들은 긴 세월 동안 악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성격의 대답보다 더 만족스런 해답을 헛되이 기다리고 있다. 첫째, 죄는 인간의 감각적 본성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 그럴 경우 죄는 언제 어디서나 감각적, 육체적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항상 그런 것이 아니다. 영적인 죄들도 있으며, 잘 보이지 않지만 육체적인 죄들보다 심각하다. 이것들은 감성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데, 마치 이런 입장에서 타락한 천사들의 존재가 설명되지 않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죄의 저자가 아닐지라도, 죄는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과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65). 우리는 이 모든 것과 더불어 다름 아닌 오직 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가능성이 어떻게 현실로 이루어지는지는 신비이며, 이 신비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죄에 대한 생각이 하나님의 지성 가운데 영원히 존재했으며, 시험적 계명 가운데 인간에게 가시화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선 외에도, 금지된 악에 대한 지식을 지녔으며, 상상은 생각들을 이상들로 바꾸는 능력이라는 사실이다(79).

타락의 시기와 관련하여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창조 후 수년을 언급한다. 이러한 시간의 명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따르면 타락은 창조 자체와 본질적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죄는 하나의 현상으로, 그 가능성은 유한하고, 가변적인 존재들의 창조 안에 주어졌으나, 그 실재는 단지 피조물의 의지에 의해 발생될 수 있었다. 죄는 창조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 하나의 능력으로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나 불순종과 범죄로 발생했고, 불법으로 창조 가운데 침입했고 창조에 속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죄가 존재하고, 죄의 실재는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죄를 취하여 하나의 자리를 지정한 하나님의 계획을 염두에 둘 때, 어느 정ㄷ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죄는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고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도 죄는 존재하지 말았어야 마땅하고, 존재할 자격도 없는 어떤 것으로 항상 반드시 존재했어야 했다(86).

 

죄의 확산. 인류의 조상이 범한 첫 번째 죄는 자기 자신과 그 모든 후손들에게 매우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고 비참함이 인류에 쇄도했다. 이로 인해 인류 전체와 특히 모든 사람이 죄책을 지게 되었고, 부정으로 더러워졌고, 파멸과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주 강하고 선명하게 눈에 띄어 특별 계시 영역 밖에서도 자주 주목되고 인정되었다. 경솔한 사람들은 인생을 하나의 게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적 이상을 존중하고, 심각하게 자신들의 죄와 싸우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인간 본성이 뿌리까지 부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89).

죄의 보편성은 성경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다시금 선언한다. 창세기 3장 이후의 내용들에서는 죄가 어떻게 인류 가운데 확산되고 확대되었는지, 그리고 결국에는 죄가 절정에 이르러 홍수 심판을 필요로 했는지를 살핀다.

원죄가 인류 가운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처럼, 원죄는 각 개인 안에도 마찬가지로 널리 퍼져있다. 원죄는 인간 전체를 지배하는데, 지성과 의지, 마음과 양심, 영혼과 육체, 모든 능력과 힘을 지배한다. 그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하고 모든 죄악의 근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으며, 죄와 악으로 말미암아 죽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생이 필요하다. 모든 구원은 객관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114).

 

죄의 본질과 영향. 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또한 죄의 시작과 죄의 유전적 확산에 대한 질문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씨앗에 감추어진 것은 배양 시에 비로소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자체는 첫 번째 죄 가운데 원리와 힘으로써 이미 활동하기에, 이로부터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질 수 있다. 그러나 천사와 사람에게 있어서 첫 번째 죄의 성격과 속성은 다르다(153).

성경이 죄에 대해 사용하는 다양한 이름들은 죄가 갖는 섬뜩한 성격과 다면적 발전을 가리킨다. ‘하타트는 죄를, 자신의 목표를 잃고 올바른 길에서 헤매는 행동으로 일컫는다. ‘아벨혹은 아온은 죄를, 구부러짐, 비틀어짐, 잘못됨, 좋은 방향에서 벗어남으로 지시한다. ‘페샤는 죄를, 정해진 경계를 넘고 하나님에 대한 언약 관계를 깨뜨리고 변절과 반란으로 드러낸다. ‘슈가가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에서 발생한 잘못된 행위를 보여 준다. ‘레샤는 악행, 죄악된 불법행위를 가리킨다. 더 나아가 죄는 아샴을 통해 죄책으로, ‘마알에 의해 부정, 간통, 배신으로, ‘헤벨에 의해 무가치함으로, ‘샤베에 의해 거짓됨으로, ‘네할라를 통해 어리석음으로, ‘에 의해 악 등으로 표시된다. 이것들은 자명하게 죄를 탈선, 불의, 불순종, 범죄, 변절, 불법, 죄책으로 묘사한다. 게다가 인간 안에서 활동하는 그리고 세상에서 활동하는 죄악된 권세는 세상으로 지시된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죄를 불법으로 이해하는데(요일 3:4), 그 척도는 하나님의 법이다(155~156).

죄의 본질은 성경을 근거로, 그리고 기독교 신앙고백에 일치하여 다음과 같이 더 자세하게 묘사되고 해설될 수 있다. 죄는 선에 대한 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 반제가 아니라 윤리적 반제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독립적 실재, 사물들의 존재로부터 자율적인 실재를 지니지 않는다. 죄는 모든 선한 것의 파괴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죽음을 도모하는 깨뜨릴 수 없는 숙명 아래에 놓여있다. 죄는 선에 들러붙어 사는 기생충이다.

비록 죄가 자신의 속성상 비존재를 그렇게 추구할지라도,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세가 없다. 그것은 창조할 수 없고, 파괴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사의 본질, 사람의 본질, 자연의 본질이 죄로 인해 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타락 전후에 동일한 실체, 동일한 능력, 동일한 힘을 지닌 동일한 피조물들이다. 인간은 타락 전후에 영혼과 육체, 지성과 의지, 감정과 열정을 지닌다. 변한 것은 실체, 즉 내용이 아니라, 이것들이 자신들을 드러내는 형태, 활동하는 방향이다. 인간이 본래 하나님을 사랑했던 동일한 사랑의 힘으로 이제 피조물을 사랑한다. 인간은 이제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을 섬겼던 동일한 자유로 세상을 섬긴다. 실질적으로 죄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가담하지 않았다. 동일한 사람이지만, 그는 이제 하나님을 향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멸망을 향해 살아간다. 죄는 어떤 본질이 아니라, 결핍과 부패, 즉 부패된 양식, 종류 그리고 질서다(168).

 

죄의 형벌. 하나님은 미리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형벌로 죄에 보응한다고 위협했으나, 범죄 이후에 그 형벌은 실행되지 않았다. 형벌은 이생에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완전히 시행되지 않았고, 심지어 죽음에서조차 아직 완전히 시행되지 않았다. 죄인은 오로지 마지막 심판의 날 이후에 그 모든 가혹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217절에서 명백하게 말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단호한 위협은 시행되지 않았다. 이 둘 사이에 이러한 형벌을 완화시키고 연기시킨 한 가지 요소가 들어왔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 후에 여전히 수많은 햇수를 살았다. 하와는 심지어 산 자의 어머니가 되기조차 했다. 그들로부터 발생한 인류는 땅으로 말미암아 지속되고 양육되었다(193). 하나님에 대한 수치, 두려움, 숨움, 그리고 뱀, 땅에 대한 저주 등과 같이 사실상 타락 후에 발효되고 선언되었던 다른 모든 형벌은 물론 형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위협을 즉시 그리고 완전히 시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여전히 인류와 세상에 대한 다른 계획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참으심과 은혜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특정한 관점 아래에서 두말할 나위 없이 형벌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형벌 가운데 선언되고, 또한 하나님의 공의도 선언된다. 성경의 보편적인 생각에 따르면, 형벌은 죄로 말미암아 손상된 하나님의 공의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을 지닌다. 그러므로 형벌의 목적은 이중적인 것으로, 과거의 범죄들을 회복시키고, 미래의 범죄를 예방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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